남겨진 자들

 

 

 

 

 

내 어머니는 괴물이었어. 난 그 여자의 목에서 아가미를 보고 손에서 물갈퀴를 보았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어. 어린 내 머리를 쓸어주던 손은 아주 부드럽고 조금은 건조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지. 매일 허드렛일을 해서 아들을 먹여 살리는 여자의 손이 흠 하나 없이 깨끗했다는 건. 시간이 지나면 좀 더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모르겠어. 어머니는 물갈퀴가 생긴 지 일주일 뒤에 절벽에서 뛰어내렸거든. 시체는 찾지 못했지만 며칠 뒤에 사람들이 해변에서 그녀의 옷을 찾아냈어. 어머니가 가장 자주 입던 흰 원피스였어. 어머니가 입고 있을 때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흠뻑 젖은 옷 한 벌이 모래밭 위에 늘어져 있는 걸 보니 꼭 어린아이가 입는 옷 같더라고. 

어머니는 어디로 간 걸까, 어머니의 몸은 어디 있을까… 어쩌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지. 그냥 녹아서 사라졌을지도 모르고. 그때 난 겨우 열세 살이었어. 목소리가 다 변해버릴 만큼 울었지. 지금 내 목소리가 흉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어머니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난 어머니가 괴물이어도 아무 상관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던 거겠지. 그녀는 적어도 마음까지 괴물은 아니었던 거야. 

혼자 남은 나는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늙은 집사에게 얹혀살게 됐어. 그녀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도 내 어머니도 좋아하지 않았어. 그녀는 걸핏하면 내 앞에서 내 어머니를 욕했지. 그런데 난 그녀가 밉지 않았어. 첫 번째로 나도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두 번째로… 에마가 내 어머니를 욕하는 건 정말로 그녀를 경멸하기 때문이 아니었어. 그녀를 진심으로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거야. 에마의 손자는 나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어느 날 내 어머니가 누군지 듣고선 내게 말하더라고.

아, 그 천사. 

결국은 그녀가 아름다웠기 때문이겠지. 그 사실은 정말 많은 부분에서 면죄부가 되어주었어. 심지어 그녀는 나의 존재조차 용서받을 수 있었지. 어머니가 있을 때도,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정말 많은 관심을 받았어. 나이가 좀 있는 여자들은 다들 내 어머니에게 자식이 있다는 걸 신기하게 여겼어. 남자들은 마치 내 어머니가 미혼의 여자인 것처럼 말을 건네왔고. 그렇게 생각하면 그녀는 천사보다는 성모 마리아에 가까웠지. 천국에서 그녀를 찾아야 한다면 말이야. 눈을 감고 있는 성모상은 어머니랑 정말 닮았거든. 그리고 성모가 내게 가르쳐준 건 어떤 여자들은 남편이 없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 어머니를 따라간 성당에서 예배를 들을 때면 가끔은 어머니가 혼자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오히려 어머니에게 남편이 있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 그녀에게 남편이 생기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연민과 동정을 전부 빼앗길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사무치게 외로운 순간에도 난 끝내 나 자신에게조차 말하지 못했어. 어머니가 뛰어내리기 고작 몇 시간 전에 나를 깨웠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가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사실 내 아버지는 살아있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그는 그저 너무 멀리 떠나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어머니는 내 뺨에 처음으로 입을 맞췄어. 그제야 난 어머니의 얼굴이 젖어 있다는 걸 알았어. 그게 정말 눈물이었을까? 바닷물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내가 잠든 사이에 이미 절벽에서 한 차례 뛰어내렸고, 그다음 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와 나를 깨웠을지도 몰라. 어머니라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여자였거든…….



*





아이작, 난 네게 한 번도 거짓말한 적 없다고 이야기했지. 하지만 난 지금부터 너한테 첫 번째 거짓말을 할 거야. 네 아버지는… 사실 살아 있단다. 바다 너머 저 멀리 어딘가에 살아 있어. 

네 아버지를 만난 건 네가 아직 내 뱃속에 있을 때야. 넌 아마 겨우 엄지 정도의 크기였겠지. 내 앞에 와서도 정의를 운운하는 바보 같은 남자였단다. 그 남자와 나는 단 두 번의 대화를 나눴어. 우리가 몇 분이나 대화를 나눴을까? 내가 그의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를 백 번은 들었을까? 고작 그 두 번의 대화로 나는 그 남자가 평생을 불행하게 살 걸 알았어. 나의 어머니는 그게 신께서 내려주신 능력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건 나의 힘이란다.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힘. 갑옷을 전부 벗어버려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나는 원한다면 언제든 그 남자에게 내 자취를 보여줄 수 있었을 거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남자를 얻으면서 그에게 나를 간신히 얻어낸 기분을 느끼게 해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곧 그가 날 볼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날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그 남자가 다친 몸으로 텅 빈 산타모니카를 헤매는 걸 보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채 돌아가는 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원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사실은 그 남자의 삶을 구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쓸 마음이 없었던 거지. 얼마나 우스운 일이니? 그가 생판 타인인 나를 위해 어떤 일까지 해주었는지 생각하면……. 

아, 이 마음. 내게 인간의 마음 같은 건 없다고, 그런 건 일찍이 문드러져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이를 생각하고 있구나. 나 때문에 평생을 불행하게 살 그 남자. 평생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아다닐 그 남자. 그가 바다에 이끌린 건 단 한 방울이 모자랐기 때문이겠지… 내가 그를 흠뻑 적셔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난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 알지 못했어. 내가 정말 그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는지도 알 수 없었어. 내가 할 줄 아는 건 내 손안에서 헤매는 그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지. 사실 나는 내 어머니를 무척 닮았거든. 그런데 그는 내 손바닥 위에 있었지만 나는 신의 손바닥 위에 있었단다. 그래서 나는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를 놓아주고도 싶었어. 신의 손에 붙잡히지 않도록…….

그러니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 내 어린 양. 언젠가 아버지를 만난다면 그냥 지나쳐버려. 그리고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너는 부디 매정한 신을 용서하렴.

그리고 나를 용서하지 마.



*




문을 열었을 때 현관문 앞에는 심해인 두 명이 서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등이 굽어 또래들보다도 한참 작았는데, 둥글게 굽어든 등은 끝내 다시 펼쳐지지 않았지만 그게 그들이 자라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엘시는 이제 폴과 크리스티나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지독한 생선 비린내가 풍겼지만 그 냄새는 역겹기보다는 어쩐지 친숙하게 여겨졌다. 그건 아마 엘시에게도 같은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폴이 입을 벌리자 어류의 송곳 같은 이가 드러났다. 그리고 고막을 낮게 울리는 기이한 목소리. 

우리는 이제 바다로 돌아간다. 함께 가자.

밤공기는 매정할 만큼 차갑게 느껴졌다. 엘시는 어깨에 두른 숄을 조금 더 단단히 여민 뒤 손을 들어 올려 폴의 뺨을 감쌌다.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이제는 이 아이들의 몸을 장미 향 비누와 부드러운 스펀지로 씻어줄 필요가 없겠지. 고작 그런 행위로는 그들이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으며, 더구나 그들에게는 이런 상태가 당연한 것이었다. 엘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게는 아이가 있어.

그들이 네 아이를 돌보고 키워줄 거다. 네 아이는 이런 세상에서 자랄 필요가 없어.

하지만 너희도 알잖니. 나는… 너희도 이 세상에서 살았으면 했는걸.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너희들이 내 아이였으니까.

아직도 선명한 기억들이 있다. 엘시는 등에 업힌 아기의 칭얼거림이 잦아들던 순간을 좋아했다. 따뜻한 젖병에서 옮아오는 온도를 좋아했고, 아이들의 커다란 머리를 뒤덮은 배냇머리를 좋아했다. 그 아이들이 언젠가 굿 유머의 로고가 붙은 아이스크림 트럭을 쫓아 뛰어가는 모습을 상상했고,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성가대 옷의 단추를 서로 채워주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엘시는 손을 옮겨 크리스티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내려앉은 코와 오그라든 입술. 벌름거리는 아가미와 움츠러든 목. 그들은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그들의 눈꺼풀은 퇴화하고 수축하여 안와 뼈에 달라붙었고, 수정체는 과하게 부풀어 올라 두 눈이 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크리스티나가 엘시의 손에 얼굴을 기댔을 때 엘시는 그녀에게 눈꺼풀이 있었다면 분명 어린아이처럼 눈을 감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깊고 평온한 어둠 속에서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고 있을 거라고. 머지않아 두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크리스티나는 가슴을 간지럽게 만드는 후두음으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윌마의 배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마. 이제 우리는 너보다 많은 것을 알고, 그걸 네게 가르쳐줄 거야.

엘시도 알고 있다. 크리스티나가 말하는 ‘우리’란 눈앞의 두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폴과 크리스티나에게는 이제 고향과 가족이 있고 두 사람은 그들을 찾아 떠날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지금 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가 커서 그녀를 떠날 때도 이런 기분이 들까? 엘시는 간신히 침을 삼키고 그래, 목멘 대답을 내뱉었다. 핏기가 가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과거의 고통은 허상이야, 엘시.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태어났고 그곳에는 언제까지고 네 자리가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한 게 둘 중 누구였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늘 두 갈래로 들렸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걸어간 길 그대로 시멘트 바닥에 나란한 물 자국이 남았다. 엘시는 그들이 떠나고서도 한참을 마르지 않는 두 쌍의 발자국을 내려다보다 현관문을 닫았다.



*




베니.

비행기는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데 당신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그냥 일찍 나와버렸어. 공항 근처의 호텔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어쩐지 그건 내키지 않더라고. 우습지, 말도 없이 떠나는 주제에 망설이는 거. 꼭 미련이 있는 사람처럼. 지금쯤 당신은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내가 당신의 곁에서 하룻밤을 더 보낸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로. 차라리 원망해 주면 좋겠어.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으니까.

나는 지금 오크 크릭 모텔에 있어. 우리가 가끔 집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 나와서 놀던 곳 말이야. 당신은 우체통이나 지붕이 있는 집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고 난 당신의 그런 방랑벽이 귀엽게 느껴졌어. 가끔은 우리 집 소파보다 오크 크릭의 낡고 녹슨 매트리스가 더 로맨틱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신은 지붕이 없어도, 벽이 없어도 당신과 내가 있는 곳이 곧 우리의 집이라고 이야기하곤 했지. 하지만 나는 그 집을 떠나면서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어. 우리는 우리 둘이서라면 무엇이든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비바람에도 갉아 먹히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었던 거야.

처음에는 악몽이었어. 당신은 겁이 없는 사람이지만 가끔 밤에 깜짝 놀라 깨는 일은 있었지. 군인들이 으레 그렇듯 말이야. 하지만 덩달아 깬 내가 등을 쓸어주며 입을 맞추면 당신은 너스레를 떨며 나를 마주 끌어안곤 했지. 그리고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잠에 들었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당신의 꿈은 훨씬 깊고 끔찍해진 것 같아. 그렇게나 강인했던 당신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 깰 만큼 두려운 게 당신의 꿈속에 있는 것 같아. 어느 날 밤에 당신은 뒤척이는 소리로 나를 깨웠고, 나를 끌어안고도 떨고 있었어. 나는 너무 무서웠어. 겁에 질린 당신을 보는 게 너무 무서웠어. 가끔은 욕실에서 숨죽여 울기도 했었지. 당신은 처음엔 내가 잘 아는 다정한 얼굴로 왜 울었냐고 물어봤지만 나중에는 내가 운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어. 목이 마를 정도로 운 건 나인데, 당신의 공허한 옆모습을 보면 당신이 울고 있는 것도 같았어.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당신 곁에 있으면 다른 여자들이 남자 친구를 두고 흔히 하는 고민을 해본 적도, 해볼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난 다른 고민을 하게 됐어. 당신처럼 좋은 사람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던 건지.

그리고 당신은 점점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되지. 당신은 미래에 아주 끔찍한 일이 닥쳐올 것처럼 행동했고, 그건 당신이 모든 걸 미루고 싶어 하는 이유가 됐어. 나는 당신과의 미래를 꿈꾸는데 당신은 언제부턴가 머무르고만 싶어 했어. 성당과 성경을 피했지만 그 반대에 있는 것들은 더욱 꺼림칙하게 여겼고. 우리의 결혼은 대체 누구의 축복을 받아야 할까? 그런 문제로 싸우기도 했지. 하지만 당신이 입술을 깨물다 미안하다고 할 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할 때 나는 마치 내 욕심 때문에 당신의 몸을 뜯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을 상처 입히는 것도 현재에 안주하는 것도 싫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리고 때로 당신의 앞으로 도착하는 백지의 편지들. 당신이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숨겨놓은 책들. 정작 내가 떨리는 손으로 911을 누르면서 경찰차가 올지 구급차가 올지 궁금해하던 순간에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지. 당신이 구급차에 실려 가고 나서야 그걸 발견했어. 나는 당신을 괴롭히는 게 뭔지 알고 싶었어. 하지만 이름 없는 편지에는 형식적인 안부 인사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고, 책장을 아무리 넘겨봐도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어.

당신은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로 가고 있는 것 같아. 그곳에서 누군가가, 무언가가 당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아. 난 한때 당신이랑 살 수 있다면 배 위에서 살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배 위에 산다는 건 바다 위에 산다는 거잖아. 난 여태까지도 바다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어. 하지만 당신의 바다는, 당신이 처음으로 내게 보여준 바다는 너무 두려웠어…….

당신이 병원에 있는데 눈물이 나지 않더라. 문득 날 떠난 건 당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당신을 책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당신이 원해서 떠난 게 아니니까. 당신은 그저 길을 잃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가 길 잃은 당신을 더는 기다릴 수 없는 것뿐이야. 난 당신을 잃어버렸어. 이 집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어. 당신이 없는 이곳은 너무 춥고 어두워. 

해가 뜨고 있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거든. 가장 어두운 밤은 동이 트기 전 새벽이라잖아. 이렇게 슬픈 밤에도 해가 뜬다는 게 정말 신기해. 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괴로웠던 일들도 언젠가는 지난 일로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아. 당신도 그래?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거잖아.

베니, 난 이제 당신의 세계에서 떠나. 이제 난 당신에게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겠지만, 어쩌면 잊고 싶은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한 마디 남길 수 있다면, 난 언젠가 당신도 그 세계에서 떠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세계로 떠나.



*




이제키엘이 섬기는 교주의 본질은 천박한 자본가야.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잘 알지. 진작 죽어야 했을 죄인의 수명을 그 애가 연장하고 있어. 

경멸을 담아 내뱉는 캐서린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사라는 다리를 까딱거리며 줄기콩과 소고기를 모아 포크로 한 번에 찍었다. 육류의 지나친 소비는 재정 형편으로 보나 생활 습관으로 보나 여러모로 부적절했다. 클레어와 이제키엘은 고기를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사라의 삶 전반을 갉아먹은 굶주림은 그녀로 하여금 고기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사라 또한 사치를 혐오하고 즐거움을 경멸했으나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약간의 소금을 친 고기가 주는 사악한 즐거움. 한때 숨을 쉬고 피가 흘렀을 누군가의 살점. 그것을 목으로 넘긴 사라는 입을 열었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그 교주는 이제 와선 시체랑 조금도 다를 게 없어. 이제키엘의 기도를 듣고 그의 힘을 키우는 존재는 따로 있고.

사라 말이 맞아요. 그 교주는 이제키엘이 섬기는 신이 누군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거예요. 우리의 신과도 조금은 다른 존재지만… 이제키엘이 교주를 위해 수행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결과적으로는 그 존재의 뜻을 따르는 것뿐이죠.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잖아? 여긴 인간의 세계야. 그분들께서 강림하시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끼리 이 비좁은 땅에서 살아가야 해. 가축을 칠 때도 기생충은 그때그때 없애야 하는 거 몰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피조차 제대로 빨아먹지 못하는 벌레를 기생충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그런 벌레는 소가 꼬리를 휘두르지 않아도 알아서 떨어져 나갈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굶어 죽을 것이다. 거기다… 우리가 말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을 위인이라면 이런 이야기가 오갈 필요도 없었겠지. 쓸데없이 정직한 그 일행들이 진작에 그를 감화시켰을 테니까. 그리고 사라는 기왕이면 이제키엘이 변하지 않는 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줄기콩을 하나 더 집어먹은 사라는 화제를 돌렸다.

오늘 그 얘기를 하려고 모인 게 아니잖아, 캐서린. 

캐서린은 말을 꺼내기 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키엘이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어. 조만간 주문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 거야.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거지?

그래. 우리의 뜻을 이루기엔 이만한 곳이 없으니까. 

줄곧 묵묵히 식사를 이어가던 나타니엘이 입을 열었다. 

20세기 초에 카두케우스란 자들이 마녀란 마녀는 죄다 잡아 죽였더군.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서는 힘을 많이 잃었소. 

그게 바로 이 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야. 모든 걸 다 기록하고 유통하다 보니 마법이니 비밀이니 하는 것들은 죄다 힘을 잃어버렸다고.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서야 뒤를 밟히기 마련이지.  우리가 이 기회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있겠어?

물론 없죠. 집세가 너무 비싸긴 하지만요.

클레어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나타니엘의 얼굴은 진지했다. 어딜 가든 돈이 문제였다. 사라가 이 시대에 와서 특히 불만스럽게 여기는 점 중 하나였다.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다 터무니없이 비싸기까지 했다. 늘 욕심이 많던 자본가들은 이제 공공의 것이어야 할 자원에까지 그들의 이름을 붙여 팔고 있다. 캐서린은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그녀 같은 사람들은 현실과 타협할 때 늘 고통을 느끼는 법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키엘을 집에 보내고 나면 사라와 나는 잠시 러시아 서부로 떠날 생각이야. 그곳에 러시아 정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이단 분파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클레어, 나타니엘, 이곳에서 자리를 지켜줄 수 있지?

그럼요. 그런데… 괜찮겠어요?

뭐가?

클레어는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 단어를 골라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러시아에서는 영어가 안 통하는 거 알죠?

캐서린은 대답 대신 사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라는 물을 벌컥 들이켰고, 잔을 내려놓은 뒤 부드럽게 웃었다. 입맛을 다시면 입술에 짭짤하고 기분 좋은 소금기가 남아 있다. 물고기보다 질기고 황량한 바닷바람보다 기름진.

언어의 장벽은 아주 낮지. 그런 건 잠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어. 이 세상에서 문제가 되는 건 돈과 여권뿐이야. 



*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하죠, 소장님?

혼잣말이라기엔 지나치게 큰 목소리였지만 사무실에는 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근 몇 주간, 아니 몇 달간 이 사무실의 문턱을 넘은 사람이 있기나 했던가? 결원이 생기면 늘 최대한 빨리 보충하는 게 규칙이었지만 리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소장에게 혼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 염려를 가장한 독촉이 도착하고, 그에 따른 조급함을 느끼긴 해도. 하지만 리가 일부러 빈 자리를 채우지 않는 건 아니었다. 리는 사무실에 혼자 있는 게 즐겁지 않았다. 사람이 있든 없든 리는 이 자리를 지켜야 했고, 가뜩이나 썰렁한 사무실에 하루 종일 혼자 있자니 퇴근하는 길 사무실의 불을 끄고 나설 때 괜히 등 뒤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또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무실의 이곳저곳이 더러워진 게 자꾸 눈에 띄었다. 그러면 리는 도저히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붐비면 청소부를 고용할 핑곗거리가 생기는데 말이야.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리는 커피 테이블 위에 앉은 얼룩을 헝겊으로 열심히 문질러 닦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는 자그마치 네 명이 한꺼번에 사라졌잖아요. 일이 있으면 뭐 해요, 할 사람이 없는데. 앨런? 농담이시죠? 앨런은 그만뒀어요. 1년 전에 회선도 끊어졌고 주소도 바뀌었죠. 찾으라면 찾을 수 있겠지만, 글쎄요. 그렇게 쫓아다니다 보면 결국은 위태로운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꼴이 되지 않겠어요. 저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네요.

그러고 싶지 않다, 라. 그게 그만두겠다는 말은 아니죠. 늘 말씀드리잖아요, 제가 아니면 이 일을 누가 하겠어요. 그리고 리는 혼잣말로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그만두진 않을 거야. 그럼 누가 이 일을 하겠어? …세상에, 사무소에 먼지가 쌓이고 있잖아. 빼곡히 쌓인 문서철 위에 후 하고 입바람을 불자 먼지가 재처럼 흩날렸다. 눈이 아프고 코가 간지러웠다. 리는 연달아 세 번 재채기를 했다. 코끝을 힘주어 문지르며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지나온 곳마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해진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걸레는 벌써 새까매졌다. 요즘 사무실 청소에 너무 소홀했나. 그러나 까마귀 사무소가 운영되는 데에 있어 사무실은 단 한 번도 중요한 조건이었던 적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로지 불가해한 기준을 통해 선발한 용병들. 적재적소에 박아 넣을 수 있는 총알들.

그리고 리. 리가 없으면 사무실은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 사람들을 사지로 떠밀고 있는 걸지도 몰라. 리는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니, 나는 분명 그러고 있어.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하지만 난 알면서도 했어. 왜냐하면… 왜? 그게 옳다고 생각했어. 세상에는 비범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젠 나도 알아. 나도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어딘가 달라. 우리에게는 우리도 알 수 없는 힘이 있어. 그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거야. 리는 소장의 요청으로 선구자 클럽 아컴 지부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리를 ‘꼬마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리고 리는 그곳에 있는 논문 중 눈에 밟히는 것을 한 부를 건져 왔다. 그건 다름 아닌 샐리 라이드의 논문이었다. 그해 결원을 보충할 인물로 샐리를 고른 건 다름 아닌 리였다. 아마 샐리는 알지 못할 테지만. 그녀가 사라지는 데에 몇 년이 걸렸지? 2년? 3년? 사람을 구하는 건 어렵지만 잃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그래서 사무실이 늘 썰렁하고, 리가 늘 편지를 쓰고 있으며, 사무소가 늘 인력난에 시달리는 것이다. 리는 끙, 앓는 소리를 낸다. 늘 이렇다니까. 청소를 하다 보면 애꿎은 데에 정신이 팔려 끝마치지 못하게 된다. 비교적 최근의 파일철에 꽂혀 있는 샐리의 논문은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손이 닿는 곳마다 부드럽게 바스락거렸고, 어느 한 장에는 리가 실수로 머그잔을 내려놓은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리는 그다지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이런 흔적을 발견할 때면 이미 죽거나 미쳐버렸거나 사라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 당신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우리는… 왜 그랬더라? 소장님, 우리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소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까마귀 사무소에서 보관 중인 논문의 원본은 샐리가 리 정도의 나이일 때 완성한 것이었다. 학술적이어야 할 문장들은 때로 지나치게 거창해졌고, 글 중간중간 그런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면 그녀의 기쁨과 흥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문을 처음으로 열었을 때의 기쁨과 긴장감.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로. 리는 문득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았다. 캄캄한 창문에 그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이고 있었다. 창문 너머의 리는 어쩐지 지쳐 있었고, 한순간에 나이가 들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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