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중턱에

 

 

2025.04.16.
하데스 II 프로메테우스
(c) sunce

 

아시아의 기후를 품은 바람이 설산의 중턱을 가로지르며, 
어느 신의 날카롭게 마른 뺨을 스친다. 피로 뭉친 머리카락을, 
불과 화산, 쇠와 망치가 일궈낸 사슬을 스친다.
하늘 중앙에 떠오른 태양은 먹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우글우글한 구름 사이로 독수리가 날아오르는데, 때마침 
모든 인간 중에 가장 강한 인간이 산에 도착해 활을 든다.
아연하게 할 눈부신 태양 줄기도 없으니, 서슴없이 시위를 쥔다.
그는 루디아 사람으로 곧 왕위에 오르고 그의 아들 아라카이오스, 
베로스, 이노스, 아그론, 니르소스, 칸타울레스가 그 뒤를 이어 
땅을 경작한다. 풍요롭고 위대하다. 그러나 오만하고 멍청하여 
신하에게 멸망당하니, 그 땅은 왕좌에 오른 노새에게 정복당한다.
이것은 수치를 부끄러워한 신들의 저주다. 이후로, 
누군가는 아들을 죽게 만들고, 누군가는 딸을 매춘시키며, 
태양을 숭상하며 가장 발이 빠른 동물을 공양하는 남자의 항복에는
그 목을 잘라 어머니에게 보내는 것으로 답한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 
형제의 얼굴을 자르며, 서로에게 아들의 살을 먹이며, 어느 민족끼리는 
살도 닿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공허의 인간이 되어 
지구를 떠돌아다니게 되니, 정해진 운명을 모면한다는 것은 
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1)
페니키아인에게 납치되었던 이나코스의 딸이 소 울음소리를 내며 
산을 헤매는데, 모든 인간 중에 가장 강한 인간은 여전히 활을 들고 
시위를 늘일 수 있을 만큼 당겨, 헤르메스를 제외한 신들이 모두 
기피하여 무엇도 자라지 않는 설산, 그곳의 독수리를 겨냥한다.
카스피 해에서부터 바람에 실려 온 염분이 그의 입술에 닿는다.

사슬에 묶인 외로운 신은 먹지 못해 메말랐고 말하지 못해 연약하다.
신은 독수리를 노리는 인간의 앞에서, 처음으로 집을 짓던 인간을 
생각하며, 불을 피우고 자신의 음식을 지키려던 인간을 생각하며, 
그들의 탐욕과 질투를 생각한다. 독수리의 부리 끝에 묻은 자신의 피가 
짙은 갈색이란 것을 생각한다.
옆구리의 서늘함과 시간의 침묵이 신을 휩쓸고 지나가니, 
가장 강한 인간의 활이 쏘아진다.
독수리는 어디로 날아갔는가, 어디로 쓰러졌는가, 지친 두 눈은 
감히 독수리를 쫓을 수 없다.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는가, 어디에 
꽂혀 떨어졌는가, 사방을 헤매는 외로운 눈동자에 겨우 들어차는 것은 
산등성이를 가르며 꽂히는 벼락이다.
이전에 커다란 칼로 소가죽을 벗겨내는 제례를 본 적이 있던가, 
가죽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무거운 철문이 열리듯 피와 장기를 쏟아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던가, 벼락은 살을 가르는 칼날처럼 천천히 지구를 쪼갠다.
천둥은 하늘을 두 어깨로 바치던 거신의 비명으로 탈피하며 
분노의 잔상이 외로운 신의 얼굴에 새겨진다.

먼 옛날, 캄페가 타르타로스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캄페라고 하면 
머리부터 가슴은 여자의 형상이고, 그 아래로는 철갑 같은 비늘로 덮인 
뱀꼬리가 달린 괴물로, 옆구리에서부터 길게 뻗은 손발톱은
한 번도 곡식 줄기를 베어 본 적 없는 낫처럼 녹이 슬어 있다.
괴물 캄페는 하늘로부터 떨어질 때 지옥의 열쇠를 삼켜 
누구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는데, 그 안에 갇힌 것은 
하늘과 땅의 아들들, 브론테스, 스테로페스, 아르게스라는 이마 한가운데에 하나의 눈을 가진 거신들이며, 
코토스, 브리아레오스, 기에스라는 오십 쌍의 팔과 오십 개의 머리를 가진 거신들이다.
캄페는 공기와 어둠을 기어 다니며, 폭풍을 일으키고, 재와 얼음으로 살을 허물었다.
눈꺼풀에서는 용암이 흘러나와 그 앞의 모든 것을 태워 삼켰다. 그런 위대한 괴물이 
타르타로스를 지키며 거신들을 감시하고 있었으나, 그 날, 신들의 신에게 
죽임 당하며, 배꼽이 잔인하게 찢기고, 그 안에 감추었던 
죄와 어둠과 지옥의 열쇠를 빼앗겼다. 그런 이유로 타르타로스에 갇힌 거신들은 탈출하게 되었으니 
그들은 캄페를 죽인 신에게 천둥과 번개와 벼락을 주어 
권능을 손에 쥐어주었다. 분노가 땅과 바다와 하늘을 가득 채웠으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황금의 시대는 끝이 나고, 이제 타르타로스에는 
코토스, 브리아레오스, 기에스가 나란히 서서, 자신들을 감옥에 집어넣어 외면했으며, 
지금은 사지가 찢긴 채로 널브러진 아버지를 감시하고 있을 뿐이다.
어깨로 하늘을 지고 있는 거신의 아버지이며, 설산의 쇠사슬에 묶여 있는 
외로운 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벼락의 의지로, 
슬픔 한 방울 스미지 않을 엄중한 벽과 청동으로 만든 문 안쪽에서 세계와 나뉘는 형벌을 받고 있다.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온다.
카스피 해를 지나는 건조한 바람과 아시리아 땅을 지나는 습한 바람이 맞물려 만든 먹색 하늘이 
전능한 태양의 눈을 가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코카서스 산에서도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신들의 신으로부터 그 어느 누구의 그림자도, 
그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들었지만, 
힘과 폭력으로 가슴에 못이 박히고 
팔다리가 쇠사슬에 묶인 채로 외로운 신은 말하지 않았던가, 
이나코스의 딸이자 산을 헤매던 소에게, 
그대의 아들이 나를 구하고 독재자는 올림포스에서 떨어질 것이다, 
라고. 그렇게 하여 피가 묻은 독수리를 노리는 인간이 눈앞에 서 있지 않는가.
그의 입은 예언의 입이 아니다.
그의 말은 운명의 말이 아니다. 그는 단지 알 뿐으로, 

신들의 신도 그 음성에 벼락을 꽂지 못한다.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피가 묻은 독수리는 이제
가장 강한 인간의 활에 맞아 죽을 것이다.
인간을 멸절시키려던 계획이 붕괴된 것처럼, 
폭군의 정의는 무너질 것이다. 독수리에게 활을 쏜 인간은 
열두 과업을 이루어 그 명성이 지구를 맹렬히 휩쓸고, 
그러나 후손은 신하에게 죽임 당하며 노새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다.
또 아들을 죽게 만들고, 딸을 매춘시키며, 
침몰한 배의 선원들을 노예 삼아 그들을 돌로 쳐 죽이고, 
시체를 묻은 땅을 밟아 지나다닐 것이다.
둥근 배를 타원형으로 꾸며내게 되는 것은 더욱 빠르게 사람을 찾아
죽이기 위함이며, 방패에 손잡이가 생기는 것은 그것으로 사람을 때려

죽이기 위함이다. 신전에 금은보화를 바치고, 석상을 빚어 만들고, 
왕의 무덤으로 그 앞을 꾸며두지만 그 안에 든 것은 허영이다.
그러나 밀과 보리, 대추야자로 술과 꿀을 만드는 여자들이 있다.
고아를 키워 살리고, 어두운 밤중에 두려움을 키우지 않고, 
금과 은과 동을 구분하고 바르는 약과 먹는 약으로 병을 치료하고, 
제사를 지내는 방법과 제물을 드리는 방법을 깨우치고, 
서로 교제하며 아끼게 될 것이다.
둥근 배를 타원형으로 꾸며내게 되는 것은 더욱 빠르게 지구를 
돌아보기 위함이며, 방패에 손잡이가 생기는 것은 우리의 몸을 
순조롭게 지키기 위함이다.
외로운 신은 인간에게 불과 함께 
사지를 으스러뜨리는 욕망과 몸을 담금질하는 사랑을 주었으니 
불어오는 바람에 무엇이 흔들리는가.

정령들이 외로운 신에게 소리를 옮긴다.
활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 
쇠사슬이 흙에 끌리는 소리, 
암벽이 격렬하며 바위가 구르는 소리, 
소용돌이가 격돌하며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 
목동이 양을 이끄는 소리와 술에 취한 자들의 웃음소리, 
그릇과 장난감을 만드느라 절그럭거리는 망치 소리, 
거친 새의 날갯짓 소리, 
거대한 포효소리를 신은 듣게 된다.
언젠가 지옥의 딸이 올림포스 산을 오를 것이다.
홀로 살아남아 눈에 젖지 않은 깨끗한 발바닥으로, 
독수리에게 활을 겨누던 가장 강한 인간처럼, 
힘과 폭력을 끌어내고자 외로운 신 앞에 나설 것이다.
타르타로스의 문이 또다시 열리고
캄페의 배를 가르며 튀어나왔던 죄와 어둠과 같은 저주가 세상을 덮을 것이다.
사지가 찢긴 채로 자식들에게 감시당하는 아버지와, 
하늘을 짊어지는 무한한 형벌을 받은 형제를 보면서
그들의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이 
외로운 신의 가슴에도 새겨졌으나 그때에 그는 몸을 돌려 
고독에 얼어붙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으니, 
그에게 힘과 폭력과 지배와 권능이란 것은 
나일 강이 더는 범람하는 강이 아니게 되고 결국에 말라붙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라지 않는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무엇이 흔들리는가.
설산은 더 이상 외로운 신을 잡아두지 못한다.
가장 강한 인간이 신에게 묻는다.
황금 사과는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습니까?
라고. 그 어느 누구의 그림자도, 그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닿을 수 없다고 하였던가. 외로운 신은 이제 
저주의 끝을 보았으니 가장 높은 신조차 그에게 
새로운 저주를 내릴 수 없다. 외로운 신이 말한다.
바로 이 순간을 예견했음이다.

 


1) 헤로도토스, 역사

 

 

'COMMISS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ani Buri Melot  (0) 2024.05.13
기도  (0) 2024.05.13
BTND 1  (0) 2024.05.13
링 위에 올라  (0) 2024.05.13